봉사는 자신을 돕는 일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강가에 나왔습니다. 아들이 헤엄을 못 치는 것도 아닌데 물가에 아이를 두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아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어디 다른 데 가지 말고 이 자리를 꼭 지켜야 한다." 아들은 걱정 마시라고 했습니다.
한식경이 지난 뒤에 돌아와 보니 아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버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들이 강물에 휩쓸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서있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목청껏 아들을 부르며 강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얼마를 찾아 내려왔을까. 태연하게 물장구을 치며 놀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하마터면 아들 앞에서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이놈아, 제자리를 지키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고 나무라자 아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가만히 있었을 뿐입니다. 강물이 저를 여기까지 떠밀어 온 겁니다."
아버지는 답답했습니다. "제자리를 지키려면 의지할 만한 무엇인가를 붙들든지 아니면 강물을 거슬러 손발을 움직여야지 흐르는 물을 탓해서야 되겠느냐." 아버지는 아들을 꼭 껴안고 엉덩짝을 때리며 타일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큰 강물 같습니다. 제자리를 지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나를 그냥 놔두질 않는다고 둘러대는 일이 흔합니다. 다들 흐름을 익히고 앞서가려고만 하니 혼자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가는 외톨이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기슭도 보이지 않는 너른 바다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겁니다. 어디로 흐르는지 분간도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건 불가능할 뿐더러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도록 놔 두어라, 큰 강물을 거스르는 짓은 부질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 이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탄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흐르는 세상에 떠밀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일은 수월치 않습니다. 떠내려 가지 않도록 기릴 만한 뜻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속류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 물길을 돌리는 엄청난 일도 제자리를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까.
봉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흐름을 좇지 못하고 기슭으로 밀려난 이들을 도와 강심(江心)으로 이끄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봉사는 세상의 물길을 돌리는 일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건 오히려 세상의 잘못된 흐름을 더욱 깊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가 없이 수고로운 일을 하면서부터 정작 도와야 할 사람은 자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리를 지키려면 끊임없이 손발을 놀려 자신을 수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토록 숭고했던, 기려온 뜻에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별빛 바라기 하듯이 뜻만 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길을 돌리는 일은 제자리를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봉사는 남을 돕는 일이 아라 자신을 지키는 일일 뿐인 것을.
2006 봉사단 소식지에 실은 글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리병 대충병 (0) | 2008.05.24 |
---|---|
분열증 환자의 변명 (0) | 2008.05.24 |
10대들에게 고백함. 누가 피해자인가 (0) | 2008.05.24 |
일제에 대한 미완의 평가 (0) | 2008.05.24 |
생태주의 유감 (0) | 2008.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