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력 부재로 고통 받는 국민
2004년에는 촛불집회로 대통령이 위기에서 벗어났고, 2008년 지금은 촛불집회로 대통령이 구렁텅이에 빠졌다. 권력을 인수한 지 100일 만에 지지도가 10%대로 곤두박질치고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4년 전에는 대통령을 지켜낸 촛불이 지금은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정권을 인수한 이들이나 정권을 내준 이들이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어찌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도대체 4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고 4년을 격한 두 촛불은 어떻게 다른가.
지난 총선과 이번 재보궐 선거의 낮은 투표율은 시민이 정치에 무관심한 정도가 아니라 정치를 혐오하는 수준이란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 연일 확산되는 촛불집회와 거리시위는 대의민주제의 용도폐기를 재촉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공권력은 촛불의 배후를 찾는다고 우왕좌왕 하는데 배후는커녕 협상 파트너도 찾을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촛불집회는 기획자도 없고 예상 루트도 없이 진행되어 겉보기에 무질서해 보이고 다음 일을 종잡을 수 없는데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수렁에 빠져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다.
지난 4년 동안 일어난 일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정치 권위의 해체, 더 나아가 정치에 대한 혐오라고 본다. 대중은 의사를 대변해줄, 믿을 만한 대리자를 찾을 수 없어 직접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정치인뿐만 아니라 NGO도 시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험 요인 중 정치력 부재는 아주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가 해체되고 난 뒤 10여 년 동안 형식적 민주주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민주적 참여를 정치력으로 승화시키는 리더십의 성숙은 그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정치력의 부재를 민주주의의 비효율로 호도하며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회기하려는 저들의 무능에 대해 촛불은 조소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까지 대통령을 비웃는 웃지 못할 세태가 개탄스럽지만 그 비유는 그냥 넘겨들을 일이 아닌 것 같다. 소신이 있으면 고집스러워 보여 충언을 듣기 어렵고 너그러우면 줏대 없이 휘둘린다 할테니 어찌 하면 좋은가 고민하는 게 출발이고, 더 나아가 대인춘풍(待人春風)하고 지기추상(持己秋霜)하면 된다. 철학 없는 장사꾼을 대통령으로 뽑은 백성의 고달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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