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미국에서 들여온 ‘미친 교육’

체거봐라 2008. 6. 25. 14:08

미국에서 들여온 ‘미친 교육’

인천일보 6월 26일자 신문 칼럼

  6월 25일 인천지역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성취도평가를 실시하였다. 작년에는 절반 정도의 학교가 실시했는데 올해는 거의 모든 학교가 시험을 봤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전국의 모든 학교가 일제고사를 치렀고, 415조치 이후 모든 학교가 성적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곧 학교정보공개법이 시행되고, 고교다양화 대입자율화 정책이 실시되면 전국의 모든 학교에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가 매겨지게 될 것이다.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평준화 체제를 풀고 학교 선택 기회를 늘여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학교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영어몰입교육과 415학교자율화 정책이 교육현장의 큰 반발을 사고, 급기야 ‘미친 교육’이라는 지탄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증명할 수도 없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청와대의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미국에서 용도 폐기된 정책을 들여와, 사교육 확대는 평준화 정책 때문이며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다양화하고 모든 학교의 교육정보를 공개하여 학교들끼리 교사들끼리 경쟁을 벌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학교는 3월에 실시한 전국일제고사 결과 공개 이후 격심한 성적 경쟁에 빠져들었다. 학교 관리자들은 공공연하게 학교 간 성적을 비교하면서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몇몇 교육청은 앞장서서 학교서열화를 기정사실화 하려고 한다. 이런 변화가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4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살펴보면, 올해 교육비 지출은 작년 같은 시기와 비교해 6.7% 증가했고 학원 및 개인교습비 지출은 12.1%나 증가했다. 이 지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실시한 일련의 정책이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부담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정부는 평준화가 학력의 저하를 가져왔고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을 키웠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평준화 체제에서 한국 교육은 OECD 국가들 중 최상위의 학력 수준을 유지했고 이는 격심한 입시 경쟁의 결과임이 여러 지표가 말해 주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학력을 유지하기 위해 청소년 자살률 세계 최고라는 비극을 감당해 왔던 것이다. 이미 한국 교육은 과도한 경쟁으로 병들어 버린 상황인데, 앞으로 더 많은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자고 주장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학교를 다양화 하고 학생 학부모의 선택 폭을 넓혀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 또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고교다양화 정책은 미국의 특성화학교와 협약학교를 본뜬 것인데 플로리다 주정부의 학교 다양화 지원 정책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미국에서는 이미 한물간 정책으로 취급받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의 학교선택을 정부가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 이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미국인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교육의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는 상황인데 미국에서 교육의 공공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하여 폐기한 정책을 들여와 공교육을 개혁하겠다고 하니 국민이 ‘미친 교육’이라 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만 진학할 수 있는 특목고에 차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사립학교에 세금을 쏟아붓는 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정책으로 정부가 공교육 파괴에 앞장선 꼴이라 할 수 있다. 인천시와 시교육청은 사립학교인 인천외고의 기숙사 건설비용으로 50억 가까이를 지원했다. 인천국제고등학교의 학생 기숙사비는 전액 무료이며 교사 1인당 학생수는 6.6명으로 인천 소재 고등학교 평균 교사 1인당 학생수에 비해 3배나 적다. 돈 없어서 사교육을 시킬 수 없는 대다수 서민은 정부한테도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부유층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학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학교를 성적순으로 줄세워 학부모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 억지에 불과하다. 헌법 31조에 명시된, 균등하게 교육받아야 할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마저 보인다. 저들은 광우병 쇠고기처럼 미국 국민이 먹지 않고 버린 교육정책을 들여와 우리 국민을 병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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