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촛불의 의미

체거봐라 2008. 7. 19. 13:48

자유주의는 구시대 권위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발 심리에 기댄 측면이 크다. 즉 자유주의 세력은 정치적 비젼과 정책으로 지지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반사이익으로 권력을 잡은 것으로 서구의 근대 초창기 생산적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대중의 권위주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자유주의 권력기반도 허물어지는 게 당연하다. 자유주의의 폐해는 선진국들이 일찍이 경험한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는데 대중은 민주개혁 세력의 부르조아적 자유주의를 기만적 개혁 또는 변절로 이해하게 되고 지지를 철회하게 된 것이다. 변절에 대한 실망이 지난 정권에 대한 평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부는 대중의 성급한 실망은 자유주의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하기도 한다. 

 

지금의 강한 리더십에 대한 지지도 마찬가지로 무능한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 심리에 기대어 형성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자유주의에 대한 환멸의 기억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강한 리더십 노선은 급격하게 힘을 잃고 있다. 이 시대의 강한 리더십은 구시대 권위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대중은 그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니 급격하게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강한 리더십 노선은  잊혀져 가던 과거 권위주의에 대한 기억만 되살려 내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반동에 대한 반발로 자유주의를 대안으로 지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대중은 과거 권위주의에 대한 아픈 기억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의 무기력과 혼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함께 갖고 있다. 그렇다고 제3의 노선이 제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정치력의 공백이 아닐까 한다. 개발 독재, 자유주의 이후에 민중 독재에 대한 지향이 자연스럽게 제출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신빙성이 별로 없다. 노동조합과 NGO가 자유주의 정권이 한 발 더 나아가 적어도 복지국가

모델을 추진하길 원했지만 복지국가 전망과 민족경제 전망, 정치혁명 전망이 혼재하면서 민중적 에너지는 구심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 하고 말았다.

 

촛불은 10년간의 정치 학습이 만들어낸 정치에너지 풀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바른 접근이 아닐까 한다.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정치에너지를 비약적으로 성숙시킨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축적된 정치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운용할 정치적 비전이 마땅히 없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타당한 지향만 찾으면 역동적인 변화를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힘을 비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잠재된 가능태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런 에너지 풀의 양적 축적을 바른 방향으로 유도할 만한 지도력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 앞으로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시험대에서 명멸해 갈 것이다. 혹자는 대중의 경박을 탓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대중에게 있지 않다. 한국 사회 대중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만한 정치의식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중적 에너지를 이끌어갈 지도력이 성장하지 못 한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