追遠報本
인천참교육연구소장 이한수
송도 오피스텔 청약 열풍, 청량산 나무들의 의문사, 교수 사회의 학력 위조 수사, 대선 주자의 땅투기 의혹, 이랜드 비정규직 대량 해고. 근래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이다. 사건의 파장이 크건 작건 이 사회의 병적 징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들께서 노파심으로 일갈하는 ‘망조가 들어도 유분수’는 이런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보수는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근본을 놓치지 않으며 그 그늘 아래에서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지켜 근본적으로는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철학사상의 당위가 성립될 터인데 요즘 하는 꼴을 보면, 본말이 전도되어,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우선 이기고 보자는 심산으로 제 근본마저 들까부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소위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지도층부터 이러니 보수는 개뼈다귀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종횡 연관성을 찾기 힘들듯 하지만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모두 일확천금을 바라는 투기 심리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투기는 망국병이다. 많은 이들이 교묘하게 ‘투자’, ‘재테크’ 운운하는데 얼토당토않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망국병이 이미 고질이 되어 골목의 아이들에서부터 학문과 진리의 전당에까지 속속들이 번진 데에 있다.
안타깝게도 이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경쟁이 상생으로 승화 발전하는 구도로 나아가기에는 아직 미성숙한 듯싶다. 만연한 부패와 비리를 일소하여 정도(正道)를 세우는 일이 먼저가 아닌가 한다. 투기는 갈브레이스가 설파했듯이 ‘사기’ 행위이니 응당 척결되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이룬 자산이 불과 한 해만에 반 토막이 된다면 누가 성실하게 일하겠는가. 모든 국민이 자식 교육에서도 투기하듯 생활을 저당 잡히는 작금의 풍토를 어찌해야 하는가. 좌우 가리지 말고 반외세 했듯이 반부패 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치부책을 들추듯 성적표와 졸업장을 꾸미는 세태에 대해 소위 보수주의자들은 어떤 방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느 시대에나 권신(權臣)들은 부패하게 마련이니 논외로 하고 이 땅에서는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없다는 말인가. 허다한 소피스트들의 난설(亂設)을 독배로 잠재운 소크라테스는 어디에 있는가.
영어능력검증시험 성적이 당락을 좌우하고 졸업장이 인생 진로를 결정하는 우리 교육이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다. 다만 이런 거꾸로 선 교육이 이 사회의 소위 시장자유주의와 불가분으로 얽혀있어 지엽말단을 들추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자기 자식만은 월수입 88만 원 비정규직을 면해야 한다는 다급한 인식이, 허리를 휘게 하는 사교육비를 울며 겨자 먹기로 감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차라리 전두환식’이라니.
『소학』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추원보본(追遠報本), ‘조상을 추모하고 제 근본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흔히 읽는다. 이 구절을 ‘멀리 좇고 근본을 따른다’로 해석하면 더 좋겠다. 유자(儒者)가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사대(事大)에 빠져 백성의 안녕을 위태롭게 만든 죄 물어 마땅하지만 요즘 식자들은 구시대 유자만도 못 하다. 한낱 모리배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본이 영업에만 골몰하여 제 잇속만 챙기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국사(國事)와 교육을 금권(金權)이 농락하는 걸 허(許)하면 안 된다. 어찌 교육이 눈앞의 이익을 좇는다는 말인가. 모리배 사학재단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썩은 간판 대학을 겨냥하라. 학력위조 논란이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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