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국가 개념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왕권의 강화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절대왕정이 수립되어 가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 교황이 황제의 권력에 기댈 정도로 한때 황제의 권력은 위력적이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황제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와해되어 갔으며 나중에는 황제의 권력이 성벽을 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중세 동안 지방 영주들이 저마다 성채를 짓고 무소불위의 자치권을 행사하면서 분열되어 있을 동안 역사는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 근대 과학 문물은 지리적 제약을 벗어나고자 하는 세계화의 조류를 만들고 있었고 지리상의 발견과 근대적 생산방식으로 인한 막대한 부의 창출은 권력의 집중화를 필연적으로 낳았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집권한 54년 중 무려 32년 동안 프랑스는 전쟁을 치뤄야 했다. 절대왕권을 수립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절대왕권을 수립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사를 살펴보면 근대국가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절대적인 왕권을 수립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절대권력을 수립하는 것은 근세의 경우 국가적 목표와 민족적 과제일 수 있다. 국사를 서술할 때 조선말 정조의 개혁이 민족국가를 건설하고 근대로 발전시킬 절호의 기회였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 의한 것이다.
[EBS大國堀起 제5편]
절대왕권의 수립과 근대적 과학 문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느 한 쪽이 결여된 체로 성립될 수 없다. 근대 과학은 왕권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과학 문물의 발전은 가장 강력한 권련 기반이었던 것이다. 근대 과학 이론의 초석을 놓은 뉴턴의 등장은 근대 사회 태동의 신호탄이자 절대왕권 수립의 바로미터로 봐도 무리가 없겠다. 뉴턴 이전에는 자연이 이해할 수 없는 혼돈의 세계였던 반면 뉴턴의 이론으로 인해 비로소 세계는 인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영국의 아이작 뉴튼이 인간 이성에 자유의지를 불어 넣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와 루소가 있었다. 위의 그림처럼 루소에 묘에는 횃불을 손이 관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의 횟불은 프랑스를 타오르게 하고 혁명의 불씨는 유럽 전체로 번져 나가게 된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적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작 뉴튼이 중세의 비과학적 미신을 타파했다면 볼테르와 루소는 시민이 권리에 눈떠고 왕정 타도에 주동으로 나서게 한 것이다.
[EBS大國堀起제4편 工業先聲 영국 세계최초의공업화대국]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발달한 항해술로 지리상의 발견을 이루면서 얻은 이익이라면 향로 수입을 통한 수익과 획득한 영토에서의 농업생산물 그리고 미개척지에서 노획한 황금 정도였다. 네덜란드는 발달한 경영 방법으로 이미 개척된 항로를 이용한 원격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거두어들인다. 그러나 뒤늦게 식민지 개척에 뛰어든 영국이 식민지에서 소비할 엄청난 규모의 재화를 생산하여 부를 축적한 것에 비하면 큰 규모라고 할 수 없다. 영국은 대량생산의 필요성에 직면하여 과학기술을 이용한 산업혁명을 추진함으로써 최초의 근대적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제임스 와트는 1769년 새로운 증기기관 특허 기술을 얻는다. 그의 동력기관은 이미 최강대국으로 성장한 영국의 발전에 더욱 가속도가 붙게 만들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격파, 1687년 아이작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원리> 발표, 1769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은 300년에 걸친 영국의 패권이 어떻게 형성되었지 보여준다. 무엇이 영국을 세계제국으로 성장하도록 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절대왕정과 해양기술 그리고 미개지를 정복해 들어가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했던기마술과 강철검이었다고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말했다. 15세기 세계 최강대국 스페인은 왜 100년의 영화 뒤에 소멸해 갔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근대철학사상과 과학의 발전을 살펴봐야 한다. 영국을 세계최강국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이런 사상가와 과학자의 역할이 컸다. 뉴턴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고전경제학 이론을 완성한 애덤 스미스 또한 영국 국부의 아버지라 일컬을 만하다. 스페인이 정복과 독점으로 부를 축적한데 반해 영국은 바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즉 개방과 자유가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업혁명 이후 영국이 부강하게 된 비결이었던 것이다.
'공감 팩션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77년 미국 독립전쟁 - 권력자들의 이권 다툼 (0) | 2009.04.30 |
---|---|
BC 17세기 아리안족의 이동은 서구 문명 발생의 기원 (0) | 2009.04.25 |
기원전 5~6세기 사회 통합 관념(종교)의 출현 (0) | 2009.04.16 |
세익스피어의 비화와 근대의 맹아 (0) | 2009.04.13 |
영국 절대왕정 형성의 역사 (0) | 2009.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