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국내 배급 제목을 왜 [North Face]로 정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최근까지 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브랜드 '놀쓰페이스'의 인기를 모른단 말인가. 우리 큰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얘기 중 하나가 '북벽' 이야기이다. '놀쓰페이스'는 한국 청소년 문화의 핵심 코드 중의 하나임을 실감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해서 겪은 문화적 충격이 기껏 국적도 모르는 등산용품 브랜드에 얽힌 경험이라니. 이런 문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 잘 모르겠다.
폐업 직전까지 갔던 먼 나라 의류 업체를 한국 청소년이 살려낼 수 있었던 원인이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이 현상의 근원을 좀 추적해 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한국의 학부모는 누구나 그놈의 '놀쓰페이스' 때문에 한 번쯤은 달갑지 않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의 영향력 때문에 가계예산을 신경 써야 하다니. 영화 [North Face]를 수입해 국내에 배급한 회사 관계자가 청소년들의 '놀쓰페이스' 열광에 짜증나는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학생들의 '놀쓰페이스' 열광을 몰랐던가. 몰랐다면 정말 바보다. 대박 마케팅 절호의 찬스를 놓친 셈이니 말이다.
청소년들이 North Face가 알프스에 있는 아이거봉 북벽이라는 걸 대부분 모른다. 나도 사실 큰 애를 가르치는 선생님 중 한 분이 놀쓰페이스 점퍼를 입은 학생을 "어이 북벽"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놀쓰페이스'가 그냥 일반 명사로 '북사면'이겠거니 했다. 그 유명한 아이거봉 북벽을 영화를 보기 전까지 몰랐다. 영화를 보고나서 속으로 '역시 North Face구나'싶었다. 암벽 등반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꿈의 아이거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속의 장면은 아래의 그림보다 훨씬 멋있다.
사진 하단을 보면 철로가 보이는데 이 철길이 북벽 중간까지 뚫려있어 많은 관광객이 암벽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도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철길이 2차세계대전 무렵에 벌써 완공되었다는 점이다. 이 철길은 영화의 스토리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주인공이 로프에 매달려 얼어죽어갈 때 그의 연인은 철길이 놓인 터널을 따라 연인이 매달려 있는 절벽에까지 다가간다.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암벽 등반 체험을 이렇게 실감나게 할 수 있으니 큰 복이다.
요즘 어린 학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무척 궁금하다. 고가(高價)의 놀쓰페이스 점퍼를 입어보고 싶어 안달하는 학생들에게 North Face 암벽 등반가의 죽음이 어떻게 보일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브랜드가 사실은 위대한 대자연의 상징이란 걸 알게 되면 자신의 허영심이 부끄러워지기는 할까. 영화를 저마다 다르게 읽겠지만 나는 그놈의 '놀쓰페이스' 때문에 영화가 전하려는 낭만과 자유의 메세지를 놓친 거 같아 좀 서운하다. 나에게 영화 [North Face]는 어린 애들의 철없는 놀쓰페이스에 대한 분풀이가 아닌가. '놀쓰', 노는 애들에게 인간 의지의 아름다움이란 게 가당키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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