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하지 않고서는 이런 표현이 나올 수가 없다. 이런 저런 자료를 들추고 어릴 적부터 문학적 상상으로 단련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추측컨데 [똥파리] 감독 양익준은 분명 양아치였을 것이다. 더러운 똥파리로 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도 이 영화를 남들 보라고 만든 게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하 전세방을 내어 놓고 영화를 하는 건지 지지리궁상으로 그냥 사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촬영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는 모양이다. 싸구려 독립영화가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인 것이 놀랍고 고맙다. 솔직히 영화는 상품 아닌가. 요즘 애들 보는 영화라는 게, 인생의 쓴맛이라고는 맛본 적도 없는 놈들이 폼잡느라고 하류 인생을 흉내내는 생똥 같은 것이거나 정말이지 구역질이 날 만큼 예쁜 것(?) 투성이인 구토물들 아닌가. 연예인이 나타나면 다 큰 애들도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때를 지어 달려들고, 어른들은 저러다가 누구 하나 밟혀죽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정말이지 역겨운 현실에게 통쾌한 욕설을 먹인 싸구려 명작 [똥파리]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애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떨까? 거듭 생각을 했다. 애들이 이런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뿐더러 그야말로 대사의 한 90%는 욕지거리이니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장르는 청소년영화, 가족영화로 분류가 되어 있으니 이것 참.... 물론 욕지거리를 따라 하며 하류를 모방하는 가소로운 폼생들도 있을 것이다. 하류 인생의 순정한 정서라는 역설을 애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영화를 선생들은 의무적으로 봐 둬야한다. 사범대학에서 이 영화를 전공필수로 부과하는 게 어떨까.
요즘 학교는 하류 인생을 솎아내기에 분주하다. 애미 애비 잘못 만나 뒷골목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애들에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납득시키는 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올바른 일이라는 확신도 잘 안 생긴다. 생존 본능으로 익힌 폭력성이 밝은 장래를 위해 버려할 악덕이라는 생각이 옳은 것이기는 한가? 학교를 포함한 모든 제도가 그들을 배제하고 마이너리티로 몰아대는데 이런 비인간적인 폭력은 왜 징치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가 익힌 상식이라는 게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비열한 자기 기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선생(先生)'이라는 말이 그대로 '기득(旣得)'이라는 뜻 아닌가. 우리가 얼마나 가소로운 자기 기만에 빠져있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똥파리]는 이런 우리에게 복음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똥파리]의 해외 배포 제목은 [Brethless]라고 한다. 이 제목도 마음에 든다. 정말 '숨막히는' 제목 아닌가.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만연한 '가족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가식으로 가득차 있는지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가족이 숨막히는 사회를 견디어 내는 마지막 보루라야 한다는 생각은 좋게 말해 일종의 기만이다.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말한다면 가족은 똥무더기를 배설하는 추악의 근원이다. 아이들은 빈곤 가정에서 하류 인생의 비참을 노골적으로 목격하며 노블리스의 가정은 비열한 자기 기만을 재생산한다. 학교는 이런 더러운 가족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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