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씨네마

전통사회의 여성의 정체성 문제, 뉴질랜드 원주민의 문화 - 웨일 라이더

체거봐라 2009. 3. 22. 22:00

우리와는 너무 먼 곳의 이야기 같지만,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싶게 만듭니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관습 등 사람 사는 곳의 보편적인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뉴질랜드 원주민의 이야기를 안방에 앉아서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건 큰 복인데 우린 이런 복에 대해 별로 감사하지 않지요. 먼 옛날 이야기와 지구 반대편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기적 같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하면서 심드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렇게 통할까' 하면서 신기할 수도 있습니다.

 

뉴질랜드 작은 마을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물질문명에 휩쓸려 다치기도 하고 또한 극복하기도 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어요. 물론 환상적인 요소가 있어 사실감을 떨어뜨리지만 요즘 판치는 환타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을 줍니다. 작가는 뉴질랜드 출신이고 베스트가 되었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이 작품이 뉴질랜드의 문화의 일면을 잘 드러낸 건 분명합니다. 영화가 뉴질랜드 원주민의 설화와 산업화 이후의 현실을 잘 엮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이 영화를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 문제를 다룰 때 언급하고는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전통사회의 관습이 남아있는 뉴질랜드 한 바닷가 마을에 여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쌍둥이 남자아이와 산모가 죽고 이로 인해 여자 아이는 가족들의 원망을 사는 운명을 짊어집니다. 아이는 촌장인 할아버지가 기르게 되는데 장남이 촌장을 계승하는 전통적 관습 때문에 남다른 소질을 갖고 있는 아이의 바램은 무시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영화가 남녀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로 언급되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여자 아이가 크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산업화 이후에 해체되어 가는 뉴질랜드 어촌의 사회적 문제까지 드러냅니다. 마을 해변가에 고래 때가 상륙해 죽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이나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나는 남정네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자연, 문명과 전통 등의 주제가 입체적으로 엮입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주제를 다룰 때 유효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인류 문명이 낳은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와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때에도 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권리를 주장할 때 남성화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여성이 남성적 권력을 갖는 것으로 남녀 평등이 실현되는 모델이 인류 문명의 파괴적 자기중심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얼마만큼 적절한 답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