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1841년부터 1853년까지 자유 흑인이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가면서 겪게 되는 비참한 노예 생활을 그리고 있는 영화 [노예 12년]이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작품상, 각종 비평가협회 작품상을 휩쓸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노예무역의 비인간성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한 작품이 여럿 생각나는데, 노예들의 선상 반란을 다룬 [아미스타드]나 노예상의 회개와 헌신을 감동적으로 그린 [미션]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새로 나온 [노예 12년]은 이들 작품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 주목에 값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을 짐승처럼 부린 야만적인 이전 시대를 보여주는 일은 인간 정신사의 놀라운 발전을 확인하는 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동의하고 박수를 칠 일인가요. [노예 12년]은 그런 인본주의적 자긍심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는 놀라운 업적이라고 평가할 만한가요.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을 반복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그 의미를 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성립 초창기의 노예무역은 엄청난 돈벌이였으며 초기 자본 축적에 크게 기여한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노예무역은 자본주의 성장의 씨앗을 낳은 창조적 경제활동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제 활동이 추악한 악행으로 비난받게 된 건 그리 오래 전이 일이 아닙니다. 성서(에베소서 6장 5절)의 ‘종들아,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주인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구절이 언급되며 고대에는 어떤 성자(聖者)도 노예제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논증되기도 합니다. <직조공의 노래>라는 작품에서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壽衣)를 짠다.’고 노래하며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질타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노예선>이란 작품에서 ‘검은 상품이 더 좋다. 검둥이가 절반만 살아남는다 해도. 8배의 이익이 남는다.’고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노예제의 비인간성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싹튼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정도 거슬러 올라가는 멀지 않은 때입니다. 그리고 노예 해방 관념이 생겨난 뒤로 200년이 흐르는 동안 그 의식은 얼마나 질적 성숙을 이루어냈을까요. [노예 12년]이 우리를 또다시 170년 전으로 데려가 우리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백인들의 노예 해방 선언은 진실로 인간 해방을 위한 것이었던가. 지금 이 시대에는 노예가 없는가.
원작 소설 [노예 12년]은 작가 ‘솔로몬 노섭’이 실제로 겪은 일을 쓴 것이라고 합니다. 1808년 미국에서 노예 수입이 금지되고 1864년 노예 해방이 선언되기까지 근 50년 동안 자유주(州)의 흑인이 납치되어 노예주(州)로 팔려가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뉴욕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노섭’은 악단의 초청을 받아 워싱턴을 방문했다가 납치되어 남부 조지아 주로 팔려 갑니다. 실제 재판에서도 심의된 일이지만 애초에 그를 초대했던 악단 관계자가 그를 술에 취하게 해 노예 상인에게 팔아넘긴 의혹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씨 좋은 백인 지주에게 팔려가 그런대로 인간적인 대접을 받습니다. 첫 노예주는 노섭의 재능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으로 노예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씨 좋은 주인도 수익성이 떨어질 만한 노예는 즉시 처분하고 마는 경제동물에 불과했습니다. 두 번 째 주인은 잔인하지만 겉치레는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노예들을 매질하며 목화밭 소출 증대를 밀어붙입니다. 그가 주로 인용한 성서 구절은 누가복음 12장 47절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는 구절을 노예들에게 읽어주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매질을 하겠노라 협박을 하곤 합니다. 노섭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다가 목수 '베스'를 만나고 그의 도움을 받아 해방을 맞이합니다. 목수 베스는 백인이기는 하지만 농장에 고용된 이국 캐나다 출신 노동자였습니다.
근대 초창기에 노예무역이 플랜테이션 농업과 삼백(三白)산업을 결합시켜 원시적 자본 축적이 가능케 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예 해방이라는 숭고한 정신사를 재조명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로 럼주를 갖고 가 노예로 바꾸고 그 노예들을 아메리카로 싣고 가 사탕수수로 바꾸고 그 사탕수수를 영국으로 싣고 가 설탕이나 럼주를 만드는 삼각무역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자본 축적이 가능했으며, 이 원시적 자본 축적이 산업혁명의 경제적 바탕이 되었습니다. 즉 근현대 자본주의는 추악한 노예무역에서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노예무역으로 부자가 되고 산업혁명을 이끌며 강대국이 된 영국은 왜 노예무역 폐지에 앞장서게 된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산업 구조 조정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개발독재 시대에 원조 경제가 삼백산업을 주축으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게 된 경제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이 산업구조 조정을 하면서 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데에는 노예제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예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산업혁명기 경제를 살펴보면 노예제가 철저히 경제 성장과 지배 구조의 유지 확대를 위해 필요하거나 불필요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노예 해방도 산업 인력 확보가 절박했던 북부 자본가 집단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거대 농장이 밀집해 있던 남부 지역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남북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 경제사를 간략하게만 살펴보아도 노예 해방이 인간 정신사의 위대한 대사건이라는 통념에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노예 12년]은 노예 해방 운동을 다룬 작품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진실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위대한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나 ‘말콤 X’, ‘넬슨 만델라’의 삶을 그린 영화도 좋지만 그냥 평범한 소시민의 노예 생활을 그린 [노예 12년]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경제사적 변화와 정치적 변혁이 우리의 의식을 크게 뒤바꿀 수는 있지만 가슴을 울리며 우리의 감성을 따뜻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의식이 우리의 감성에 스며들어 일상생활의 변화까지 일어나는 데에는 참으로 지난한 세월이 필요합니다. [노예 12년]이나 [헬프]같은 영화는 노예 해방이라는 숭고한 이념이 우리의 감성에까지 스며들도록 만듭니다. 노예 해방이 이미 지나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의 노예근성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200년 전에 살았던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불현듯 우리 일상 속으로 껴들어와, 지금 우리의 삶이 저들의 삶과 어떻게 다른지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또 하나의 약속]이 그린 황유미의 삶은 [노예 12년]의 노섭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요.
'공감 팩션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라투스트라, 소크라테스, 공자, 철학을 낳다 (0) | 2022.03.27 |
---|---|
[햄릿]과 함께 르네상스 탐사 (0) | 2022.03.24 |
프랑스 혁명 전후 예술 사조 이해 -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0) | 2009.12.14 |
프랑스 혁명의 세계화와 나폴레옹의 등장 (0) | 2009.11.26 |
7년전쟁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 (0) | 2009.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