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감성지수) 높이기

경쟁교육, 청소년 자살, 학생 인권 관련 추천 도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체거봐라 2011. 6. 10. 14:34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세상 굴러 가는 모습을 그대로 닮았지요. 아니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그래도 학창시절이 좋았다고들 말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학창시절에 말도 안되는 일을 수없이 겪었을 텐데 그 시절이 그래도 제일 좋았다니요, 그럼 지금의 삶은 그보다 끔찍하다는 말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솔직히 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맘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아마 삶의 무게를 좀 과장되게 넋두리 하다 보니 지난 시절 추억이 좋게만 보이는 걸 겁니다. 어떤 이는 그래도 그때가 낫다고 할 만큼 사는 게 팍팍하겠지요

 

그 시절 우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영혼을 빼앗긴 쥐떼였습니다. 피리 소리가 우리를 어디로 몰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우르르 몰려가면서 걸리적거리는 걸 밟고 넘었습니다. 정글의 법칙과 적자생존 자연도태의 룰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만고불변의 법칙이었습니다. 피리 소리를 의심할 만큼 여유도 없었고 자유는 맛본 적이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애덤 스미스(보이지 않는 손)와 찰스 다윈(적자생존)을 하멜른의 사나이(피리 부는 사나이)로 내면화되었습니다. 피리 소리를 열심히 따라가면 자유를 획득하리라 믿었습니다. 떼지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곧 죽을 것처럼 헐떡거리며 연명할 줄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구정물을 헤엄쳐 건너 가는 나 자신이 대견할 뿐이었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의 찬오는 살벌한 경주를 견디어 내지 못하고 도태되고 마는 쓸모없는 쥐입니다. 나머지 쥐들은 그가 무대에서 내려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급을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 '사무라이 강'의 열정은 존경받아 마땅했습니다. 그가 맡은 쥐들만은 제일 앞에서 헤엄을 칠 수 있도록 고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예상 문제는 적중했고 그가 맡은 반은 늘 최고였습니다. 그러니 반평균을 깎아먹는 저질 쥐는 공동운명체 성원으로 자격이 없는 겁니다. 마땅히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가야 했습니다. 찬오는 자살하고 맙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부적응 학생의 자살 문제를 인터넷 학교신문의 자살 사건 기사화화 관련된 학생과 학교 간의 갈등으로 그렸습니다. 학교측은 당연히 이 사건을 부적응 학생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찬오가 죽기 전날 작년 한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게 문제의 발단이 됩니다. 학교 신문 편집부원인 민제와 영우도 그 전화를 받았습니다. 작년에 찬오와 한 반으로 '사무라이 강'의 휘하에 있었고 편집부 창립 멤버인 민제와 영우는 아주 친한 사이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묘한 갈등에 빠집니다. 찬오의 죽음이 자신의 무관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면서 입시를 앞둔 학생으로 학교와 갈등이 벌어지길 원치 않습니다. 결국 기사화할 것인가, 누가 기사를 쓸 것인가 하는 미묘한 문제에 얽혀 듭니다. 3회 걸쳐 기사화 하기로 했지만 결국 중단되고 말지요.

 

우리 교육의 근본 문제는 명확합니다. 열 명 중 한두 명을 선발하는 경쟁구도 속에서의 인성교육이란 게 말이 안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참다운 교육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학우가 꺼꾸러져도 한 눈 팔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자신도 한 순간에 루저(loser, 실패자라는 의미를 가진 유행어)가 되어 버립니다. 옆에서 학우가 죽어가는데도 무관심해야 한다니요. 이건 교육이 아니라 살육입니다. 이런 살육전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으니 학교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세력 확장을 위해 마을 상권을 초토화시키는 재벌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아주 비정하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이 작품이 학교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에 아주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작품이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어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월간으로 신문을 내고 학생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보자고 학기초에 편집부 학생들과 의기투합 했는데 한 학기가 다 가도록 신문을 못 내고 있습니다. 그냥 작년처럼 학기마다 한 번 의례적으로 내게 될 모양입니다. 실리는 기사도 뻔합니다. 직업 소개, 대학 탐방 그런 꼭지들로 채워지겠지요. 방과후수업, 야간자율학습, 학력평가, 수행평가, 경시대회 등등 수많은 학력신장 프로그램이 빼곡하게 한 치의 틈도 없이 돌아가는데 신문은 언제 만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가 학교의 비극적 단면을 들추었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참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