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학생들 사이의 위계질서에 관한 이야기로 이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폭력 가해자가 얼마나 비인간화 되는지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영화로 [똥파리]가 있는데 이 영화는 학교 이야기가 아니라 좀 아쉬웠습니다. [파수꾼]은 학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면으로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등장 인물이 모두 학생이라 청소년들이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교내 폭력에 관한 이야기로 근래에 나온 [바람 Wish]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교내 폭력 문제를 좀 장난스럽게 다뤘습니다. 싸우면서 큰다는 둥, 크면서 한 번 안 맞아본 놈이 있냐는 둥, 성장기 폭력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폭력의 대물림 현상을 그냥 봐넘길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은 나쁜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성장기 폭력 이야기의 고전은 아무래도 [우상의 눈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상국의 이 소설을 모르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시대를 풍자하기 위해 청소년의 폭력을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였을 뿐 성장기 폭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아홉살 인생]이나 영화 [우리 형]도 성장기의 폭력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 문제에 집중한 건 아닙니다. [친구]는 폭력세계를 환타스틱하게 그려 가장 안 좋게 봅니다. 느와르(폭력 액션 장르)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항을 생각하면 이런 영화의 흥행 성공을 아주 나쁘게 보는 게 제 입장입니다.
학교 폭력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여러 연구들이 있긴 하지만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뾰족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폭력을 양산하는 시스템이라 어떤 방안도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다만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적 혁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마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찾아 봐야 합니다. 영상을 이용한 교육이 유효한 한 방법이 될 수 있고 청소년의 폭력 문제를 다룬 작품 중 주제의식이 진지하면서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작품을 고르는 작업은 아주 의미 있다고 봅니다. [파수꾼]을 토론용 교재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기를 기대해 봅니다.
[똥파리]는 폭력이 가정에서 재생산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파수꾼]이 불우한 가정환경이 폭력의 원인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똥파리]와 달리 폭력의 원인을 심리적으로도 접근하고 있어서 학교 생활의 소외 문제를 더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수꾼]의 특이한 점은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 학생이 실상은 가장 불안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으며 가해 학생이 결국 자살해 버리고 마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해 학생이 나쁜 놈이고 피해 학생은 착하기만 한 게 상식적인 도식인데 이 영화는 이런 상식을 뒤집습니다. 폭력은 심리적 상처, 트라우마를 감당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방식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해 학생은 불우한 가정에서 비롯된 듯한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 폭력을 동반한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똘마니를 거느리면서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똘마니들은 강한 패거리에 소속됨으로써 찌질이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으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생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청소년들의 폭력과 위계에 의한 소외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잘 형상화 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소위 왕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베블렌 효과 (veblen effect)'라는 사회심리학 개념을 쓰는 것이 유효할 것 같습니다. '베블렌 효과'란 남들과의 차별성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심리를 말합니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낮아질수록 오히려 수요가 줄어드는 특이한 현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한 계급(부자들)은 명품(브랜드 가치가 터무니없이 높은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서민들은 구매할 수 없는 엄청난 고가의 명품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귀족임을 확인하고자 하기 때문에 대중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낮아지면 명품으로서의 효용이 사라지니 더이상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런 행태는 병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보다 아주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심리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인간의 행복감은 결국 질투심에 불과하다는 심리과학의 연구 결과는 이런 행태가 대부분의 인간에게서 보이는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다같이 골고루 넉넉해지는 것에 대해 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만 특별히 넉넉해지는 것이 큰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는 연구 결과는 행복의 본질이 질투심이란 걸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블렌 효과는 특수한 계층의 삐뚤어진 의식이라기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반적 심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남의 불행을 통해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를 참 불편하게 만들지만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따 현상을 철부지 아이들의 삐뚤어진 일탈로 치부해 버릴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런 현상에 대해 보다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른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서열화 기제는 학력, 지위, 재산, 인맥 등등이 될 것입니다. 나이가 어리고 문화적으로 단순한 아이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열화 원리는 대체로 폭력성에 근거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쉽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듭니다. [파수꾼]은 바로 이런 차별화 기제로서의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 습득한 폭력이라는 생존 전략으로는 소외를 극복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근본적인 소외를 더 깊게 만들고 말아 결국 자아를 파괴하고 만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학력과 지위, 재력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증명받으려는 삶의 태도는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잘난 척하는 사람과 더불어 지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런 삶의 태도는 점차 자신을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겠지요. 결국 혼자 살아남아 무인도 표류자가 되거나 모두가 비웃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 버릴 겁니다. 한동안은 자기 기만으로 버텨내겠지만 오래 갈 수는 없습니다. 자기 기만이 깊을수록 회복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립니다. [파수꾼]의 가해자 '기태'는 '동윤'을 친구로 생각하지만 '동윤'은 살아남기 위해 똘마니 노릇을 한 것일 뿐 실은 '기태'가 만악(萬惡)의 근원이었다고 털어놓고 '기태'는 친구의 배신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맙니다. 자기 삶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던 유일한 친구로부터 가장 비열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기태는 더 이상 삶을 끌고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파수꾼]은 폭력을 혐오하는 내가 도덕적 품성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자기 기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합니다. 저 어리석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만한 자격이나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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