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감성지수) 높이기

미혼모 아기 입양, 유기견 - [혜화, 동]

체거봐라 2011. 10. 6. 13:27

처음엔 유기견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물병원에 근무하는 여성이 재개발 지역 동네에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이야기이다. 동물 애호가 이야기로 오해할 만하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주인공 여성의 사연이 조금씩 드러난다. 이 여성은 미혼모로 아기를 낳자마자 입양을 시킨 경험이 있다. 아기를 버려서 버려진 개에게 집착하는 것인가. 부자가 되려는 욕심 때문에 살던 집을 부수고 기르던 개까지 버리게 된 것인가. 만만치 않은 사연을 가진 인물과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배경과 배경인지 인물인지 애매한 유기견들이 차곡차곡 얽혀 있어 눈치 빠르지 않은 사람은 자칫 의미망을 놓칠 수 있다. 적어도 고등학생 쯤은 되어야 볼 만한 영화이다. 사랑과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사춘기 여학생이 보면 좋을 듯하다.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는, 첫사랑 경험 없는 대학 초년생이 보면 딱이겠다.

 

이 영화는 교훈적 의미가 크다. 사랑은 대개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문제다. 식욕처럼 성욕도 충족되면 금방 식어버린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인간의 관계는 그리 단순치 않다. 섭취와 배설이 생각만큼 단순치 않듯이 관계와 소통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 복잡하다. 그래서 욕망으로서의 사랑은 위험하다. 십중팔구 인격의 손상을 입는다. 한 번 상처를 입으면 전인생이 휘청거린다. 물론 개과천선하여 완연히 딴 판일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개 누대에 걸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혜화, 동]의 주인공 혜화는 아들 삼 형제를 둔 아비가 바깥에서 낳아서 들여온 여식이다. 혜화는 유기견 같은 존재이다. 불행은 당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있는 셈이다. 혜화는 어린 고등학생과 사귀어 임신을 하고 어린 남자가 감당을 못 하자 낳은 아이를 입양시켜 버린다. 내가 부모에게서 생겨났듯이 내 삶은 자식에게 유전된다. 물이 흐르듯이. 

 

[혜화, 동]은 불교의 인연(因緣)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부터 심상찮다. '혜화'는 주인공 이름이고 '동'은 뭘까. 감독은 아이(童)라는 의미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리 단순치 않은 모양이다. '겨울(冬)'이라는 사람도 있고 '매한가지(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똥꼬가 빠질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면서 혜화네 집 혜수(개 이름)를 임신시킨 떠돌이 개랑 혜화를 임신시키고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린 한수는 매한가지다. 짐승을 우습게들 보는데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게 뭔가. 밖에서 딸애를 낳아 들여온 혜화 아비도 똑같다. 혜화는 남자 집안의 구구한 변명과 무책임한 처사에 항거하지 않는다. 혼자서 아이를 낳고 아이는 혜화에게서 분리된다. 출생 직후에 죽었는지 살아남아 입양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친권포기및입양동의서에 서명을 한 것을 보면 혜화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모든 게 다 연관되어 있고 애나 어른이나 짐승이나 인간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긴 한데, 막약 우주 만물이 다 그러하다면 난 옴짝달싹 할 수 없이 제 자리를 맴도는 시계 바퀴라는 말이 된다. 내 자유의지라는 건 착각에 불과하고 존엄성이란 것도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뜻이다. 결론적으로 난 이런 관점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내가 교육자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는 걸 존재 이유로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신념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추상적 사고 능력이 짐승의 감각적 인지 능력과 본질적으로 다르고 이런 인식 능력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으며 세계의 개조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자아는 판단의 주체일 수 있고 자기 혁신 또한 가능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