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한 이 시대에 이런 신파극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결같이 눈물 없이 읽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이런 소설에 크게 감동하지 않는 법인데 솔직히 눈시울이 시큰했습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가시고기]를 청소년이 읽으면 어떤 면에서 좋을까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슬픈 이야기가 청소년들의 정서에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감정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인성(人性)의 발달과 사회 진보에 각각 어떤 기여를 하는지 규명하려는 시도는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브레이트의 비평 이론은 카타르시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논설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보일 수 있는데 전 이 문제를 좀 단순화하여 심리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으로 양분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만 잘 해주는 사람이 좋습니까? 아니면 만민을 위해 일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좋습니까? 저는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브레이트의 비평관점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인 저한테는 학생을 가르치면서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실천적으로 기여하는 선생님보다 나에게 남다른 정성을 기울이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비판 정신과 실천적 참여와는 거리를 둬야 합니다. 내가 맡은 학생이 성적이 오르도록 하는 데에만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제 자식과 학생만을 잘 가르치려고 하는 풍조는 그 자식과 학생들의 미래를 점점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남보다 잘 살고 싶어 저마다 경쟁에 충실하면 다 잘 살게 될까요? 권력자는 힘 안 들이고 백성을 통제 관리할 수 있게 되고 힘 없는 백성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점점 더 고달파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교육을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문화 전반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봅니다. 대중은 당장 듣기 좋은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극중 인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대리만족하는 심리는 누군가 나한테만 특별히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어린 학생들의 심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에 영합하는 대중문화는 결국 대중을 더 나쁜 사회적 조건으로 몰아넣을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브레이트는 바로 이런 점을 지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이 극적 상황에 몰입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이런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을 아름답다고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저는 브레이트의 비평적 관점에 대해 많이 공감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무턱대고 몰입하여 울고 웃고 하는 건 어떻게 보면 추잡한 일일 수 있다는 겁니다. [가시고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도 되는지 속으로 찜찜해 한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 작품을 선정한 애초의 이유가 학생들이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만하다는 점이었으니 그에 합당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읽어나가면서 인물 간의 갈등이 너무 뻔하고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고 만든 이야기처럼 사건 전개가 너무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읽혀도 좋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고기]의 시인 아빠는 너무 착한 사람입니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나쁜 사람입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너무 쉽게 버렸고 제 영욕을 위해 자식의 재능을 이용하는 듯한 뻔뻔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으니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이럴 수 있을까요? 사람 관계라는 게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쁜 편과 좋은 편으로 갈릴 수 있을까요? 백혈병에 걸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아비 혼자 갖은 고생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치르고 자식을 살려내게 된다는 이야기 전개는 가슴 뭉클하긴 하지만 왠지 이 세상 일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오직 우리 마음 씀씀이가 순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이 고달프고 누추한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천상 세계의 천사와 같은 마음을 회복하는 것으로 우리 삶은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소설이 독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해서 좀 불편했습니다.
모든 게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대에는 마음 씀씀이가 가장 큰 행복 조건이라고 널리 설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먹고 살 만하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염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진정한 행복이란,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케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이기심을 되돌아 보게 만들고 천사같은 마음의 구체적 형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감히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그냥 착하기만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살아 남기 위해 한없이 뻔뻔해진다고 제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란 걸 말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삶의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분투하다 참다운 삶의 자세을 잃어버리고 만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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