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팩션 세계사

자라투스트라, 소크라테스, 공자, 철학을 낳다

체거봐라 2022. 3. 27. 22:27

BC5세기경 고대문명의 비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 B.C 5세기 유적(가운데 조로아스터 형상)

 

현재까지도 사람들이 성인 또는 현자로 받들고 있는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이들은 대체로 기원전 5~6세기에 활동한 인물들로 신앙의 대상으로 추앙받거나 스승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들 인물들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며 공통되는 요소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하겠지만 이질적인 문화를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기 위한 이론을 만든 작업의 결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간은 결국 한 조상의 자손이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 왜 필요했을까.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한 중동 지방의 종교는 이런 설화를 한 뿌리로 하고 있는 다양한 변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시 말해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는 모두 유사한 내세관을 갖고 있으며 그 발생의 지리적 배경을 같이 하고 있다. 그 뿌리는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

 

조로아스터교는 페르시아 제국의 형성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공자의 사상은 주나라 뒤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형성되고, 석가모니의 사상은 아리안족의 이동으로 인해 형성된 인도지역의 여러 도시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치열했던 시기에 발생했다. 이렇듯이 이들 종교가 발생한 시대적 배경은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랜 전쟁을 겪으며 점차 고대국가가 형성되어 가던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 바로 그 공통점이다. 이들 종교가 왜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는가 하는 의문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바로 이런 사회 역사적 배경의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국가 또는 제국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통합시키기 위한 통합 관념이 필요하다. 그 통합 관념은 다양한 이야기로 나타나지만 그 공통점은 유일신 또는 전제군주 사상이고 상대주의를 배격하는 절대주의적 관점을 정립시켜 이질적인 문화를 통합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가장 뒤늦게 형성된 고대 희랍 사상은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전파되어 오는 다양한 세계관에 대항하기 위해 논리의 정합성을 추구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공자의 사상은 패권 다툼으로 전란에 휩싸인 중국 대륙을 통합하기 위해 고안한 통치 이념인 것이다.

 

다비드 작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런데 문제는 이런 통합 이념이 이전 역사에서는 왜 형성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흥망성쇠했던 여러 제국의 통치 이념이 어떠했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수많은 기록을 남긴 이집트는 거대 제국을 수천 년 동안 유지했는데 그 통치 이념이나 통합 관념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뿐인가. 몽골과 중국 북방 지역을 넓게 차지한 흉노제국의 사회 체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 우리의 역사 서술은 이런 점에서 아직 분명치 않은 부분이 많다. 세계 종교의 발생은 아리안족의 이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히타이트와 아시리아가 이집트와 경쟁하던 시기의 역사는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지, 미노아 문명 파괴 이후 페르시아 형성 때까지의 공백기는 어떻게 서술할 것인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소크라테스(BC469~399)와 소피스트

 

트로이 전쟁(B.C 13세기)에서 승리한 그리스는 도시국가의 연합체였다. 트로이 전쟁은 지금의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아시아 문명과 유럽 문명이 충돌하면서 일어난 전쟁으로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건이다. 700년 뒤인 B.C 492년에 일어난 페르시아 전쟁으로 아시아와 유럽은 다시 충돌하게 된다. 이때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연합하여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치고 델로스 동맹을 맺으면서 아테네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졌고 전공을 세운 시민들의 주권 의식도 높아져 민주정은 더욱 강화된다. 아테네의 지배력이 날로 커지자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에 반발하게 되고 델로스 동맹에 대항하여 펠로폰네스 동맹으로 결집하게 된다.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고 그리스 사회는 분열과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혼란기를 살며 자신의 철학을 세워나갔고 소피스트들의 혼란한 논설을 평정할 진리 탐구 원리를 정립해 나갔다.

 

페르시아 전쟁 때에는 하나로 뭉쳤던 도시국가들이 전쟁이 끝나자 다시 분열하기 시작했고 결국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전쟁을 치루게 되는데 군주제(과두정)의 스파르타가 민주제의 아테네를 제압하고 승리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 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전쟁을 겪으면서 자기 철학의 바탕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나라의 일을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논설가들이 논쟁을 벌이면서 점점 변론가(소피스트)들이 판을 치게 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런 혼란이 아테네의 비극을 자초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진리를 제대로 세워 이런 논란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목숨까지 바치게 된다. 그의 희생은 제자에게 큰 가르침을 남기게 되고 플라톤의 이데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황제의 스승이 되고 그의 철학을 바탕으로 알렉산더 황제는 동방원정을 추진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최전성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