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에 있는가 알려면 주변을 둘러봐야 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누구 뒤 또는 누구 위’로 자기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죠. 결국 내 존재 자체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런데 자기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자꾸 위를 보면 열등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보다 잘난 이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상향비교라고 합니다. 그 반대는 하향비교라고 하지요. 상향비교를 자꾸 하면 열등감에 빠지고 하향비교를 자꾸 하면 우월감에 빠지겠지요.
내가 어떤 사람인가 파악하려면 자동적으로 어떤 가치 척도로 누군가와 비교하게 됩니다. 그 가치 척도가 외모이든 재력(財力)이든 상관없이 결국 서열화시킬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면 어쩔 수 없이 상향비교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자기 인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요. 상향비교를 하지 말고 하향비교를 해서 자부심을 갖도록 처방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비교 만족하면서 소외(疏外)되는 것 아닐까요. 열등감보다는 우월감이 낫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영 꺼림칙합니다. 내가 그런 인간밖에 안 되다니…….
우리가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달성 정도로 서열화시켜 비교함으로써 나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면 그 욕망이 곧 나라는 존재를 결정짓는 게 아닙니까. 당신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어떤 물건을 갖고 싶으십니까?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그것을 원하게 되었나요? 여러분의 그 바라는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좀 생뚱맞지만 원하는 이가 나 자신이 맞는가요? 내가 누군가에 의해 길들여졌다면 나를 길들인 그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원한다는 것이 실은 조종자가 원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냥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끔찍하다는 느낌이 드는 실험입니다. 실험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실험 대상인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쳤더니 나중에는 종을 치기만 해도 침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조건 반사 행동은 학습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던 것이지요. 조건 반사란 사고(思考)를 거치지 않은 즉각적 반응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시 말해 무비판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논리에는 무서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종당할 수 있다는 진리 말입니다. 여러분은 속으로 저마다 ‘그럼 내가 개란 말인가’ 하고 불쾌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의 행동 중 상단 부분은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반사 행동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합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싫더라도 말입니다.
요즘 광고계에서는 뉴로 마케팅 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뉴로 마케팅이란 쉽게 말해 뇌과학의 성과를 마케팅에 도입하여 판매량을 늘리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모 대기업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뉴로 마케팅은 ‘서브리미널 마케팅(subliminal marketing)’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서브리미널은 sub와 liminal이 합쳐진 말이니 ‘무의식적’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서브리미널 마케팅은 인간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쳐 물건을 파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뉴로 마케팅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사람들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소비자는 참 불쾌해집니다. 그런데도 뉴로 마케팅 기술 도입을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공공연하게 발표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미국에서는 이 문제가 심각한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기술을 쓰지 못하도록 법률이 제정되기도 했지요. ‘비카리(James McDonald Vicary)’라는 광고업자가 1957년 뉴저지의 한 극장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새로 도입한 영상장치를 이용하여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1/3000 초라는 짧은 순간에 특정의 메시지를 화면에 보여주었습니다. 보이는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행동에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영화 상영 중에 "Drink Coca-Cola"와 "Hungry? Eat Popcorn" 라는 메시지를 보여 주었더니 콜라의 판매는 18.1% 증가했고 팝콘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57.8%나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이 세간의 주목을 받아 심리학계와 광고업계, 주정부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고 이런 방식의 마케팅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간수 죄수 역할을 나누고 규칙을 설명하는 장면
우리의 의지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는 흥미로운 자료가 있습니다. 2001년 독일에서 발표된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1971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에서 실제로 시행된 감옥 실험을 토대로 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거액의 보상금을 제시하여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죄수 간수 역할을 분담하도록 하는 실험이었다고 합니다. 이 '환경 조작에 따른 심리 변화 실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라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되었는데 14일간의 실험으로 계획되었다가 실제로는 5일 만에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2001년 독일에서 만든 영화는 실제로 진행되지는 않았던 나머지 9일을 극적으로 구성하여 결국 실험 참가자 중 2명이 살해되는 파국적인 결말로 그렸고 끔찍한 장면이 너무 많아 청소년 관람 불가로 분류되었습니다. 2010년 미국에서 다시 만든 동명(同名) 영화는 5일간의 실화를 담아 미성년자도 볼 수 있도록 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보기 힘들 만큼 스토리 결말이 참담합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험 자체가 너무도 끔찍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실험으로 증명된 인간의 사악한 내면을 직시한다는 그 자체가 이렇게 끔찍할 수 있다니 내가 인간이라는 게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죄수와 간수(감옥 관리자)로 나누어 역할을 맡겼는데 실험이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은 자신이 흡사 죄수가 된 것처럼, 또는 간수가 된 것처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곧 인간의 의지라는 건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규정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겁니다. 이 실험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으며 상황과 역할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간수 역할을 맡은 자들이 죄수에게 폭행을 가하는 장면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회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나(我)’의 정체성은 어떻게 확인될 수 있을까요. 나란 존재는 있기나 한 것일까요. 내가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불교 경전 <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아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직 구도자라 볼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결국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는데 ‘나(我)’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도리(道理)와 이치(理致)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매슬로우’라는 심리학자는 자아실현 욕구가 가장 높은 차원의 욕구라고 했는데 이 욕구마저도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의 삶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입니까. 자아실현이란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값비싼 물품을 사서 기분 좋은 건 자아실현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낮은 수준의 욕구 충족일 뿐이지요. 그것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기업의 온갖 교묘한 마케팅 기술에 넘어가, 나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허망한 짓일 뿐이잖아요. 노동의 소외라는 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몇 개월 열심히 노동하여 모은 돈으로 명품을 구입하는 행위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만다는 의미로만 이해합시다. 그러니 자아를 실현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마저도 헛된 망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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