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팩션 세계사

영국의 산업혁명과 애덤 스미스 고전경제학의 탄생

체거봐라 2022. 4. 5. 22:01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대전환기에 세계 지배 패권이 지중해 연안 국가, 그리스 로마에서 대서양 연안 국가,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으로 넘어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일은 역사 발전의 동인(動因)을 이해하는 키포인트라 할 수 있다. 패권국이 지중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갔다는 흐름 패턴은 대체로 파악되지만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항해술의 발달을 가져온 해양 문화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학설과 함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이론이 향신료 전쟁설이다. 이 학설에 의하면 왜 그렇게 많은 나라들이 동방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향신료인 후추가 그 당시에는 황금보다 더 비쌌다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 되지만 실제로는 후추 생산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주로 인도에서 생산되던 후추가 왜 유럽지역으로 운반될 수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대항해 길을 개척하게 되었을까?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까지 내려가 인도양으로 가는 바닷길은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시아 유목민족의 대이동에 의한 동방 세계의 문화적 격변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함락되고 이 도시를 통해 무역 거래가 되던 향료(후추)는 더 이상 유럽 지역으로 공급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 [페티 1453] 콘스탄티노플 성곽과 보스포러스 해협 장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유럽과 아랍 지역을 잇는 교통로가 단절되었고 이 도시를 통해 무역 거래되었던 향료(후추)는 더 이상 유럽 지역으로 공급될 수가 없게 되었다. 유럽인들에게는 콘스탄티노플을 우회하는 새로운 무역로 개척이 절실해졌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경유하는 항로가 개척될 수밖에 없었다. 1488년에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에 다다르고 이어 바스쿠 다 가마에 의해 인도 항로가 개척된다. 중동 지역 아랍 세계의 성장이 유럽인의 아메리카 개척과 프론티어 정신을 촉발시켰으니 위기가 곧 기회가 된 셈이다.

 

과거로 좀더 거슬러 올라가 오스만투르크의 성립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투르크는 그리스 이웃 국가 터키와 같은 말로 우리가 흔히 돌궐족이라고 알고 있는, 유라시아 대초원 지대를 지리적 배경으로 성장한 유목 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조상이 세운 고조선과 고구려, 흉노족이 세운 훈 제국, 몽고 제국과 인도의 무굴제국,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모두 이 민족의 분파가 세운 국가라고 보면 된다. 이 민족은 세계사의 변곡지점에 핵심 변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3세기경 훈족의 이동에 밀려간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로마 제국은 종말을 맞았고 고대 중세 시대 전환이 되었다. 15세기 경에는 오스만투르크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중세에서 근대로 시대 전환이 이루어졌다.

 

중세 근대 전환기에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고 보스포르스 해협 동서양 교역로가 단절되면서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었다. 포르투갈의 항해가들에 의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까지 항로가 개척되었고 1492년에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은 콤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된다. 신세계의 발견으로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두 나라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이후 100여 년 동안 유럽의 맹주 역할을 감당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세로로 양분하면서 세계 식민지를 분할 점령한 것이다. 그러나 소유지의 확장과 황금의 수집에 만족하고 있을 동안 네덜란드와 영국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급기야 스페인에 도전할 정도가 된다. 네덜란드는 무역으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패권을 손아귀에 넣게 된 것이다. 결국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영국은 근대(近代) 새 역사의 주역으로 자리잡게 된다.

 

영화 [콜럼버스 1492]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동방의 선진 문화 덕을 많이 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가 이 책을 탐독할 수 있었던 것은 인쇄술의 발달로 책인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달한 것은 몽고에 의해 동방 세계, 즉 중국의 활자 기술이 유럽에까지 전파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스페인의 기독교 통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무어인을 축출할 때 사용한 화승총도 중국의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이끈 홍건적이 몽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 기술이었다. 그러니 중국에서 시작된 문명 전파가 유럽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가 닿게 되고 콜롬버스와 그의 동생 바로톨로메오가 세계 지도를 만들어 팔면서 근대 역사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발달한 항해술로 지리상의 발견을 이루면서 얻은 이익이라면 향신료 수입을 통한 수익과 획득한 영토에서의 농업생산물 그리고 미개척지에서 노획한 황금 정도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익은 본질적 점령지의 물품 약탈에 의한 것이라면 네덜란드는 개척된 항로를 이용한 원격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거두어들임으로써 스페인을 능가하는 부를 축적하게 된다. 그러나 뒤늦게 식민지 개척에 뛰어든 영국이 식민지에서 소비할 엄청난 규모의 재화를 생산하여 부를 축적한 것에 비하면 큰 규모라고 할 수 없다. 영국은 대량생산의 필요성에 직면하여 과학기술을 이용한 산업혁명을 추진함으로써 최초의 근대적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EBS 大國堀起 4편 영국 세계 최초의 공업화 대국]

 

[EBS 大國堀起 41777년에 생산된 증기기관]

 

영국의 산업혁명은 분업과 생산 설비의 기계화로 고품질 상품을 저렴하게 대량 생산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는 제임스 와트의 1769년 증기기관 발명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영국이 1588년에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약 200년이 지난 1769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발표는 영국의 근대화 세계 패권 장악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그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무엇이 영국을 세계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절대왕정과 대양 항해술 그리고 미개지를 정복해 들어가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기마술과 강철검이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가 있는데, 15세기 세계 최강대국 스페인은 왜 100년의 영화(榮華) 뒤에 소멸해 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근대 철학사상과 과학의 발전을 살펴봐야 한다.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이런 사상가와 과학자의 역할이 컸다. 뉴턴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고전경제학 이론을 완성한 애덤 스미스 또한 영국 국부의 아버지라 일컬을 만하다.

 

스페인이 정복과 독점으로 부를 축적한 데 비해 영국은 바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즉 개방과 자유가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이것이 바로 사업혁명 이후 영국이 부강하게 된 비결이었던 것이다. 절대 권력이 무역을 통해 얻은 이익을 독점하던 방식은 경제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자유 시장 경제는 분업을 통해 이익이 생산자들에게 널리 분배되었으며 분업은 작업 과정의 기계화를 촉진하게 되었고 대량 생산된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경제 활동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낳았고 생산과정의 기계화는 뉴턴의 물리학으로 근현대 과학의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