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고집(固執)과 의지(意志)는 어떻게 다른가?

체거봐라 2011. 5. 30. 11:47

 

고집(固執)과 의지(意志)는 어떻게 다른가?

 

우린 보통 의지가 강한 사람을 굽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착증(집착하여 이상한 행동을 하는 증세)이 있는 사람을 의지가 강하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의지라는 것이 그냥 변함없는 일관된 행동을 의미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다시 말해 고집 센 것과 의지가 강한 건 엄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우린 의지가 강한 사람이 되고 싶지 고집 센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 않습니까. 이 둘의 다른 점은 뭘까요?

 

앞에서 의지(意志)를 파자(글자를 쪼갬) 분석해 보았는데 그기에 이미 답이 들어 있습니다. 意는 ‘마음 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이고 志는 ‘마음 가는 대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좀더 설명을 보태면, 마음 속에 세긴 뜻과 그 뜻대로 실행하는 것을 ‘의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세긴 뜻이 바르고 아름다워야 하며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가 좇아야 할 바른 마음, ‘의지’인 것입니다. ‘의지’를 이렇게 이해하면 마음을 이루는 또 다른 측면인 지성, 감성과 불가분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공자(孔子)의 말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공자는 益者三友(익자삼우), 보탬이 되는 세 벗을 곧은 사람(直;곧을 직), 성실한 사람(諒;믿을 량), 견문이 넓은 사람(多聞)이라고 했는데 이 셋은 각각 감성, 의지, 지성을 의미한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앞에서 저는 감성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 또는 아름다운 마음씨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아름다운 마음을 곧은 마음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곧은 마음과, 성실한 마음, 두루 경험하려는 마음을 늘 가까이 하라는 공자의 말은 知情意를 두루 갖추도록 노력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할 정도로 딱딱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나한테 보탬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셈을 하면서 사람을 사귀는 게 그리 좋게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친구란 자고로 어울려 신나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친구란 그래야 합니다. 우정은 이해득실(利害得失)을 따질 수가 없으며, 즐겁게 어울려 신나고 나와 친구가 하나가 된 듯 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주변을 둘러봅시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습니까. 같이 어울려 지내는 또래를 친구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친구가 뭐 대단한 것이라고 그렇게 따질 필요가 있는가, 그냥 그때 그때 어울려 놀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까.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친구를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럼 나이가 든 나중에는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바뀔까요. 그렇지요. 잘 모르겠지요. 이제 다른 이들은, 나와 세대가 다른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먼 역사 속의 사람들은 친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봐야겠지요.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신 목을 내놓을 수 있는 친구 관계’라는 뜻입니다. 목을 내놓는다는 말이 좀 끔찍하니 그냥 ‘친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합시다. 여러분, 차분하게 생각해 봅시다. 그런 친구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자기 곁에 많은 친구가 있었으면 할 것입니다. 많은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인기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친구 관계(대인 관계)가 좋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앞에서 살펴본 ‘진정한 의지’가 답입니다.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딱딱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그 친구들이 참 좋아지려면 마음 속에 세기세요. 곧은 마음(情), 두루 쌓은 경험(知), 성실한 실행(意), 이 셋이 기준입니다.

 

손자삼우(損者三友), 나한테 손해가 되는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을 굳이 친구라고 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도 늘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곁에 본받을 사람이 없으면 내가 그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나한테 손해가 된다고 내치고 멀리 하면 그들은 영영 버림받지 않겠습니다. 그런 점을 잊지 말고 어떤 사람이 경계해야 할 사람인지 살펴 보도록 합시다. 편벽(便辟 ;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아첨하는 사람), 선유(善柔 ; 성실한 마음이 없고 겉으로만 부드러운 사람), 편녕(便佞 ; 말로는 다할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무능한 사람) 을 친구로 사귀면 손해(損害)입니다

 

익사삼우와 손자삼우를 비교해서 살펴 봅시다. 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요. 뭘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을까요. 그 기준이 저는 선량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근본입니다. 익자삼우의 올곧은 사람을 바로 착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올곧은 사람은 뜻을 바로 세운 사람을 말하는데 뜻을 바로 세운다는 게 뭐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제치고 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좋은 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어진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좋은 뜻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니 올곧은 뜻을 세운 사람은 착한 사람인 게 맞습니다. 얼핏 보면 착한 사람이 손해만 보고 독한 놈이 잘 되는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다른 이들과 진심으로 통하는 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욕심이 많아서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 늘 남들의 시기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욕심만 많고 올곧지 않은 사람은 아첨하길 잘 합니다. 굽힐 수 없는 자기 기준이 없으니 눈치만 보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믿을 수 없으니까요.

 

올곧은 마음만 있으면 뭐 합니까. 양심대로 행해야 합니다. 실천의지가 약해도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남을 속이지는 않지만 게을러서 약속을 잘 못 지킵니다. 그러니 일을 맡겨도 불안합니다. 대놓고 거절하기 미안하니까 대충 그러겠다고 말해 놓고 곧 잊어 버리는 건 속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혀 ‘싫어’라고 자주 말하면 나쁜 인상을 심어 줄까봐 가급적 웃으면서 ‘좋다 좋다’ 하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버릇이 되면 ‘실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인간형이지요. 공자도 겉으로만 친절하고 실없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겉 모습만 너무 신경을 써서 영 믿음이 안 가는 실없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런 세태가 걱정스럽습니다. 주변에서 접하는 것들이 모두 그런 것이라서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겠지만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들 실없이 겉을 꾸미려고 하니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는 겁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여 믿음이 안 가는 사람, 겉으로 꾸미기 좋아 하는 사람,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 이런 사람과 같이 지내는 건 참 불편합니다. 내가 이런 면이 있는지 항상 경계해야겠습니다. 지조(志操) 있는 사람은 늘 한결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약속을 어길 리가 없고 눈속임을 할 리도 없겠지요. 지조(志操)라는 한자어가 이런 의미를 잘 담고 있습니다. 志가 ‘마음먹은 대로 뚜벅뚜벅 나아 간다’는 의미인 건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操가 참 의미심장합니다. 손(扌=手)과 ‘떼지어 울다’는 의미의 ‘喿’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나무(목) 위에서 많은 새들(品;입이 많다)이 지저귀고 있는데 이를 손짓(扌=手)으로 지휘 통제한다는 의미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지조(志操)가 뭘 의미하는지 분명해졌습니다. 지조 있다는 건 그냥 고집이 세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굳게 세운 뜻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따르게 한다는 의미이지요.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권합니다. 지조가 뭔지 금방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