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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의 교훈

해방된 지 3년 1948년 제주에서는 너무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제주도 북촌리 ‘너븐숭이’에 널려 있는 수많은 애기무덤은 그때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돌림병이 돌아도 저렇게 끔찍하지는 않았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애기들이 무더기로 묻혔을까. 그 옆으로, 소설의 한 장면처럼 줄지어 서 있는 무덤 위에 까마귀 때가 내려앉아 있는 모습도 참 심란하다. 일본놈들에게 그렇게 당하다가 해방이 되었는데 동족에게 더 심하게 당했으니 이럴 수가 있는가. 그 날로 돌아가 보자. 제주 4.3평화공원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하면서 곧바로 남한에는 미군정이 들어선다. 전국적으로 인민위원회가 자생적으로 성립되었고 그 연합체로 ‘조선건국동맹(건맹)’ 결성되었지만 미군정이 민주적으로 형성된 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

자라투스트라, 소크라테스, 공자, 철학을 낳다

BC5세기경 고대문명의 비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 B.C 5세기 유적(가운데 조로아스터 형상) 현재까지도 사람들이 성인 또는 현자로 받들고 있는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이들은 대체로 기원전 5~6세기에 활동한 인물들로 신앙의 대상으로 추앙받거나 스승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들 인물들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며 공통되는 요소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하겠지만 이질적인 문화를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기 위한 이론을 만든 작업의 결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간은 결국 한 조상의 자손이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 왜 필요했을까.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한 중동 지방의 종교는 이런 설화..

[햄릿]과 함께 르네상스 탐사

문명 중심 이동과 근대의 시작 ⓒ 구글 지도 세계사가 서구 중심으로 서술되어 한계가 많은 가설이긴 하지만, 문명의 중심은 지중해의 동쪽 끝 아라비아 지역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서쪽으로 이동해 간 것으로 보는 것이 쉬운 이해 방식이다. 이스탄불 해협 동쪽에서 선진문명이 태동하고 해협을 사이에 둔 두 문화권이 서로 맞서 있으면서 지중해 극동지역은 문명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된다. 고대사는 서양 그리스 문명과 동양 페르시아 문명이 이스탄불 해협을 경계로 대립 경쟁한 역사로 단순화시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 문명은 동방의 지혜로부터 충격을 받아 성장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고 동방 세계의 선진문물을 배워 서방의 미개 지역을 정복해 들어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서구 문화는 지중해 동편에서 서쪽 끝..

단편소설 <동백꽃 인연>

점순이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마름 집 딸 점순이는 소작농 아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자꾸 집적거린다. 남자애가 제 마음을 몰라주니 신경질이 났을 것이다. 맛있는 감자를 줘도 싫다고 하고 닭싸움 놀이를 하자는데 화부터 내니 미워 죽겠나 보다. 소작농 아들은 마름집 애가 자꾸 그러니 자기를 업신여긴다 싶어 어깃장을 놓을 수밖에. 큰 싸움이 날 지경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둘은 동백꽃에 파묻혀 쓰러지며 부둥켜안게 된다. 찌릿찌릿 뭔가 통한다. 사춘기 남녀 애들이 서로 껴안고 꽃밭에 쓰러지는 장면이 마음을..

창작 소설 2022.03.17

유정의 녹주 사랑

젊은 시절 박녹주와 김유정 김유정은 젊은 시절 스켄들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휘문고를 다닐 때 판소리 명창 박녹주에게 반하여 스토킹을 한 일이 유명하다. 김유정이 목욕탕 앞에서 박녹주가 나오기를 기다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박녹주가 목욕을 하고 공중목욕탕을 나서고 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릿결은 더욱 눈부셨고 말갛게 씻긴 새하얀 얼굴 살갗이 꼭 애기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정의 가슴은 금방 터질 듯 두근거렸다. 녹주는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그녀의 일거수이투족은 유정 눈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는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녹주의 앞에 유정이 나서며 길을 막았다. "누구신지?" "선생님의 소리를 좋아합니다." 유정은 고개를 숙이고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요?" "선생님께 전하고 싶..

창작 소설 2022.03.15

3.8 여성의날을 맞아 되새기는 조선의 위대한 여성 선각자 김마리아

3월 8일 오늘은 114주년을 맞는 세계여성의 날이다. 1908년 뉴욕의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되었다. 대한제국이 망하기 두 해 전인 구한말 시대에 미국에서는 여성노동자 수만 명이 가두시위를 했다는 게 참 놀랍다. 동양 사회는 성평등 의식이 뒤쳐지고 남성 중심 문화가 아직 만연하다는 인식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구한말 이 나라에도 위대한 여성 선각자가 많았다는 걸 알면 우리 조상들의 전근대 문화만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조국 독립을 위한 비폭력 저항운동이 우리 역사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듯이 이 투쟁을 이끈 여성 선각자의 일대기는 우리 민족의 선진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한다. 1919년 조선에서 벌어진 3.1만세 비폭력 저항운동이 중국의 5.4운동, 인도..

에세이 2022.03.08

황진이를 그린 소설과 영화에 얽힌 사연

북의 작가 홍석중의 『황진이』와 남의 작가 최인호의 『황진이』를 같이 보면 역사를 보는 시각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한 작가 홍석중의 소설을 남한에서 영화로 만들어 남과 북에서 같이 상영한 일은 우리 역사 공부에도 엄청나게 큰 기여를 한 셈입니다. 홍석중 원작 장윤현 감독 영화에서 ‘진이’가 사랑하는 ‘놈이’의 유골을 깊은 산중에 들어가 뿌리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실제로 북한 금강산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2007년 일입니다. 제가 금강산에 간 게 2009년인데 그 무렵의 일이 아득한 옛날 같습니다. 북의 작가가 쓴 작품으로 영화를 만들고 남과 북을 오가며 촬영을 하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황진이』를 촬영했던 금강산 옥류동 계곡에서 북한의 젊은 안내원들과 한 잔 술을 마시며 이..

에세이 2022.03.07

87년 6월항쟁 도화선 이한열 열사 어머님 별세, 고인의 명복을 빌며 - 영화 [1987]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꼭 30년이 지난 2017년 연말에 그 시대를 다룬 영화 [1987]이 개봉되었다. 한 세대가 지났다. 우리 세대에게는 직접 겪은 일이라 기억을 되살리며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요즘 20대들에게는 너무 먼 옛날 일이라 별 느낌이 없을을 것이다. 먼 과거의 일을 두고 세대차 나는 젊은이들과 공감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옴으로써 요즘 젊은이들과 한 세대 전 역사의 현장으로 함께 갈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사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30년 동안 그 시대가 어떻게 그려져 왔는지 6월 항쟁 팩션의 역사를 함께 둘러보았으면 한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어찌 그리 무모할 수 있는가?’ 이해가 되지 않을 일들이 그 시대에는 참 많이 일어났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

자연으로 돌아가자 - [뷰티플 그린]

물질문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널리 퍼지고 있는 캠핑 문화도 이런 흐름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니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사유하는 일은 어불성설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느냐' 하는 철학적 질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짓으로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가' 하는 회의(懷疑)가 일상이 된 셈입니다. 주말에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가고 싶은 마음들이 이런 캠핑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 근처에라도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가의 캠핑 장비를 사들여 도시의 생활을 그대..

사라지는 학생의 날 – [이름 없는 별들], [알 수 없는 내일]

11월 3일이 ‘학생의 날’인 줄은 어렴풋이 알고들 있는데 왜 그 날로 정했는지 다들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53년에 일찌감치 정부기념일로 제정되긴 했지만 1973년 유신독재 때 폐지되었다가 1985년에 되살아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저항 의지가 탐탁지 않은지 널리 그 뜻을 새기려는 움직임도 없으니 잊히는 게 당연합니다. 일제에 항거해 일어난 3.1만세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은 다 젊은 학생들이 주도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독재 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4.19의거, 5.18광주항쟁도 다 10대, 20대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새겨진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젊은이는 다 어디로 간 건가요. 학생의 날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